미국에 온 지 3개월 정도 되었나, 처음 오는 나라에 적응하며 생기는 긴장감과 쏟아지는 일에 밀려드는 부담감을 회피할 수단을 찾는 와중이었다. 나는 독서와 쇼핑, 바다 보며 멍 때리기 그리고 되려 일의 결과에 집중하는 방법을 택했지만 다 극복하지는 못해 답답한 마음을 안고 지내는 편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선배 언니가 등산을 간다며 아주 신나하는 것을 보자 괜히 호기심이 생겨 함께 가겠다고 얘기해버렸다. 등산 모임의 주도와 진행 방식도 잘 모른 채 있는 등산화와 작은 가방을 들고 참여해버린 것이 산타에고 산악회의 whale peak hiking이었다.
완연한 돌산이었다.
산을 자주 가는 편이 아니지만 더 낯선 풍경이 걷는 네 다섯 시간 계속 신선하게 이어졌다. 다녀오고 몇 주가 지난 지금도 그런 돌무더기 산을 오른 적은 처음이었다고 낯선 데서 오는 긴장감이 즐거운 날이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만큼 유의미했다.
정상에 다 와 갈 무렵, 선두 그룹도 잃고 후미 그룹과도 멀어져 어쩌다 보니 혼자 남은 것 같은 순간이 생기는 순간이 있었는데 높이 아무 구름없는 하늘과 잘 나는 수리과의 조류와 아주 땅 끝으로 파져 있는 듯한 흙 가득한 바닥이 보였다. 한국에서 그런 큰 새가 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순간은 주변에 아무 것도 없어서 스릴이 느껴지기도 했다.
딱 그때 주섬주섬하게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는데 숨이 편안함을 느꼈다. 험한 돌산을 오르면서도 산 아래를 그렇게 평온한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이미 산을 올라온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졌고 조용함이 주는 현실과의 이질감이 생각보다 크게 좋았다.
오르는 길에서는 처음 온 사람이라 더 조심스러웠는데 내려오는 길은 발이 닿았던 길도 잘못 들었던 길도 익숙하게 느껴지고 함께 간 분들과도 한결 편해져서인지 수월했다. 해가 쨍쨍해서 얼굴은 탔지만 쨍함이 좋게 느껴졌고, 선배 언니가 평소에 등산에서 느끼는 쾌감과 내가 느낀 즐거움이 같지는 않을 수 있지만 두루 좋은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다른 풍경의 산도 가고 싶다는 기분 좋은 여운을 남겼다.
일기를 종종 쓰지만 어디 내어놓는 편은 아니다. 이것은 다 저 반질반질한 가방이 탐이 나 에세이라는 자비롭고 폭넓은 장르에 슬쩍 혼자만 보는 메모장을 공개할 기회가 되고 욕심을 드러낼 순간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산을 오르는 것 또한 가장 시초적인 인간의 욕심에서 기초되는 것이 아닌가 괜스레 방어해 본다.
2023.1.28_Whale Peak
*사진 찍은 것 조금 추가해서 올려봐요 :)
희수님 정말 글 잘쓰시네요. 편안하고 잔잔하게 쓰시는데 글이 흡입력이 강해서 끝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갔어요^^ 저 반질반질거리는 Gregory 백팩이 희수님 등에 착 붙어 있을 그날을 응원하며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