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에는 “산악인”이라는 타이틀을 따기 위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통과 의식 같은 산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시에라 네바다의 14K 봉우리들을 이겨낼 역량이 있는지 그 자격을 엄격히 테스트하는 그곳의 이름은 바로 샌 골고니오 피크 (San Gorgonio Peak)입니다. 서든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높은 11,499 피트의 높이를 자랑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험준한 산행 코스로 체력과 정신력이 준비되지 않은 수많은 하이커들을 오늘도 가차 없이 산 밑으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험을 통과한 자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하는 명산 중의 명산, 그 정상을 향해 오늘 산타에고와 함께 떠나 보시죠.
샌 골고니오를 오를 수 있는 길은 총 3가지입니다. 비비안 크릭 트레일 (Vivian Creek Trail)에서부터 시작하는 17.9mi의 남쪽 코스, 사우스 포크 트레일 (South Fork Trail)에서 시작해서 드라이 호수를 지나 정상까지 오르는 22.5mi의 북쪽 코스, 그리고 샌 버나디노 피크 (San Bernardino)을 시작으로 총 9개의 봉우리를 지난 뒤 정상에 도착하는 25.8마일의 서쪽 코스가 있습니다. 각각의 코스마다 전혀 다른 특색과 난이도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서쪽 코스의 경우 산행 중 획득 고도가 거의 두배 정도 높기 때문에 본인의 체력과 경험에 맞춰 코스를 선택하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비비안 크릭 코스는 아침 일찍 서두르신다면 당일 코스로도 완등이 가능하지만 만 피트가 훌쩍 넘는 힘든 산행이니만큼 다가올 고산증을 대비해 1박 2일의 여유로운 산행을 추천드립니다.
세 가지 옵션 중 가장 힘든 서쪽 코스를 선택한 산타에고 회원님들의 얼굴에는 전에 없는 긴장감이 흐릅니다. 이틀 동안 하나도 오르기 힘든 산봉우리를 무려 9개나 넘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괜스레 장비와 배낭을 한 번 더 꼼꼼히 점검합니다.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캠핑 의자나 카메라 같은 아쉽지만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을 차에 남겨두고 최종 배낭의 무게를 체크한 후 일행은 서서히 샌 골고니오의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얼마 걷지 않아 주변에서 느껴지는 산뜻한 파인 트리의 향기는 일행을 맘 가득 설레게 하였고 불과 방금 전까지 고민하던 모든 것들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기분에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첫날의 목표는 11마일을 걸어 산 능선에 위치한 트레일 포크 캠프 그라운드 (Trail Fork Campground)까지 가는 겁니다. 11마일의 짧은 거리지만 총 7,552 피트의 획득 고도 중 5,500 피트를 오늘 올라야 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걸음을 옮깁니다. 샌 버나디노 국유림 (San Bernardino National Forest)의 특징 중에 하나는 고도에 따라 무척 다양하고 풍부한 동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능선 부분 수목한계선 근처에서 만날 수 있는 생전 처음 보는 꽃과 나무들은 산행 내내 일행들을 감탄하게 하였습니다. 오늘 산행의 중간 지점인 럼버 파인 캠핑장 (Lumber Pine Campground)을 지나자 나무들의 높이는 허리 아래로 낮아졌으며 시원하게 탁 트인 360도 파노라마 뷰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서쪽 능선의 끝에 이르면 커다란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벤치를 만날 수 있으며 이곳에 앉아 바라보는 선셋이 무척 아름다우니 기회가 된다면 한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9개의 봉우리 중 San Bernadino Peak, San Bernardino East Peak 그리고 Anderson Peak 총 3곳을 지나 도착한 캠핑장에서 일행은 마침내 무거운 백팩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맛있는 저녁 식사 후 텐트에 누워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낮게 드리워진 은하수를 감상하다 오늘 하루의 산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하늘에 눈을 비비고 나온 텐트 밖에는 저 멀리 빅 베어 호수 (Big Bear Lake)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모닝커피를 즐기는 이 시간은 아마도 모든 백패커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의 순간이지 싶습니다. 회원님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해 오신 아침식사를 함께 나누고 야영지를 정리한 후 둘째 날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오늘 만나게 될 봉우리는 총 6개로 Shields Peak, Alto Diablo, Charlton Peak, Little Charlton Peak, Jepson Peak, San Gorgonio Peak의 순서로 차례차례 오르게 됩니다. 이 구간은 수많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로 이루어져 있어 체력 소모가 많은 구간이지만 마지막 Jepson Peak에 이르러 그 뒤를 돌아보면 지난 이틀간 지나온 8개의 봉우리가 파노라마로 한눈에 담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샌 골고니오 정상까지의 마지막 2마일은 모든 산행을 통틀어 가장 힘든 구간입니다. 11,499 피트의 높이가 무색하지 않게 대기 중 산소는 무척 희박하며 한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거친 숨을 몰아쉬게 됩니다. 고산증으로 시작된 두통과 매스꺼움으로 인해 체력과 정신력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게 되며 이미 수목한계선을 한참 지난 높이로 인해 주변에 앉아 숨을 돌릴 수 있는 나무 한 그루조차 발견하기 힘듭니다. 당장이라도 산행을 포기하고 하산하고 싶지만 앞뒤에서 같이 걸어가는 산타에고 회원님들을 보니 다시금 힘이 생깁니다. 그렇게 몇 시간의 고군분투 후 마침내 도착한 산 정상에서 일행은 서든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높은 산을 정복했다는 성취감과 함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걸어준 주변의 동료들에게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 명성만큼이나 눈부신 정상에서의 뷰는 지난 이틀간의 힘든 여정을 값지게 해주었고 한참을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하산을 시작하였습니다.
내려오는 길 일행은 산 중턱 산마루에서 2018년 이곳을 휩쓸고 지나간 Valley Fire 산불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1,350 에이커의 산맥이 불타 없어졌으며 저 멀리 지평선 끝까지 새까맣게 타버린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이곳은 마치 나무들의 묘지와도 같아 약간의 망연자실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바라본 그 아래 죽어버린 나무들 사이로 새롭게 피어나고 있는 수많은 어른 나무들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강하게 이어지는 대자연의 생명력에 다시 한번 경외심을 갖게 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중에서도 산행을 통해 대자연과 교감하며 가슴이 울리는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산타에고의 문을 두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가슴이 따뜻한 많은 분들과 함께 같이 산행하기를 기대합니다. Let’s hike!
San Gorgonio Wildness 퍼밋 정보: https://www.sgwa.org/permits
글_Jay Lee (산타에고 회장), www.santaego.com